李英爱吧 关注:24,656贴子:221,499

最特别の爱【11.11.07图片】李英爱09年在夏威夷结婚照片

只看楼主收藏回复

最特别の爱【11.11.07图片】李英爱09年在夏威夷结婚照片


1楼2011-11-07 12:08回复
    结婚照片终于来了,MARIE CLAIRE杂志的,就是11月份的那个杂志上的


    2楼2011-11-07 12:09
    回复



      3楼2011-11-07 12:10
      回复
        


        4楼2011-11-07 12:10
        回复



          5楼2011-11-07 12:11
          回复



            6楼2011-11-07 12:11
            回复
              采访
              Being a woman, being a mother
              이영애는 그냥 이영애다. 배우, 스타, 연예인이라는 수식은 이영애에게 모자라거나 넘친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 이후 6년간, 배우 이영애의 활동은 유보되고 있다. 그사이 그녀는 단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에도 출연하지 않았고, 패션 행사나 연예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미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그간 이영애가 자진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은 광고뿐이다. 그런데도 이따금 들려오는 그녀의 개인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폭발적이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생중계에 가깝게 인터넷을 도배한다. 정작 이영애의 존재적 실체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사실은 그래서 역설적이다.
              스무 살 때 초콜릿 광고 모델로 유명세를 탄 이래로 큰 굴곡 없이 톱스타의 자리를 지켰고, 괴담 수준의 황당무계한 루머를 제외하면 딱히 스캔들이라고 부를 만한 변변한 사건도 없이 흘러온 이영애의 20여 년은 대중에게 활짝 열려 있었던 적이 없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미지일 뿐인지, 실제의 그녀에 근접한 것인지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이영애를 이영애로 만드는 것은 일종의 '격'이다. 그것은 태어나 한 번도 누군가에게 욕을 퍼부으며 악악대고 싸워본 적 따위는 없을 것 같은, 옷장을 열어보면 시즌별 트렌드 아이템 대신 십 수 년째 고집해온 서너 가지 브랜드의 기본형 아이템이 들어 있을 것 같은 느낌과 비슷하다. 화려한 대신 은은하고, 요동치는 대신 한결같은 여성적 아름다움이 이영애에게 오버랩되는 이미지다. 그녀에게 기대되는 고급스러운 우아함이 대중의 판타지일 뿐이든, 그녀의 


              7楼2011-11-07 12:12
              回复
                실체에 가깝든 이영애는 어떤 수식도 없이 그런 자신으로 인식되고 이해되는 존재가 됐다.
                이영애는 그냥 이영애인 것이다. 언젠가 이영애의 하루에 대한 인터넷 유머가 유행한 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oo 비누로 세수를 하고 oo 샴푸로 머리를 감은 후 oo 정수기 아줌마를 기다리는'으로 시작되던 스토리는 광고계를 점령하다시피 한 이영애라는 특수한 존재에 헌정된 뒤틀린 오마주 같은 것이었고, 동시에 그녀의 이름이 보편적 세계에 대해 갖게 된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에둘러 알려주는 일이었다.
                오늘의 이영애를 만든 것은 다른 무엇보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의 안방을 점령한 드라마 <대장금>이다. <대장금>이 성공 이상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사랑을 대가로 지불하고 남자의 배경과 능력을 통해 불우한 환경에서 벗어나는 기존의 여자 캐릭터들에서 비껴 있었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대장금은 전 세계 어느 왕조보다도 성별과 신분의 제약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조선시대에 실존했던 인물을 모델로 삼았다. 아름답지만 자신의 아름다움을 이용하지 않는 드라마 속 대장금은 오늘날의 이상적 커리어우먼에 가깝다. 현대적인 외모와 도시적인 이미지로 사극에는 어울릴 수 없을 것 같던 이영애가 대장금의 캐릭터와 융합을 이루면서 드라마와 이영애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키게 됐고, 한류의 중심에 서게 됐다. 그러나 배우 이영애에게 <대장금>이 득이라고만 볼 수는 없었다.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대장금>의 잔영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장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건 인간 이영애도 마찬가지다. 이영애는 장금이었고, 장금이가 이영애였다.
                


                8楼2011-11-07 12:12
                回复
                  采访好长.怎么发不上来了


                  9楼2011-11-07 12:14
                  回复
                    이영애를 장금이와 떼어놓은 것은 박찬욱 감독이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숨은 공로자인 장금이는 화면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금자씨의 파격성을 부각시키는 데 톡톡히 한몫한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화사하게 웃던 이영애는 이제 친절해 보일까봐 붉은색 아이섀도를 칠하는 여자가 됐다. 고정된 듯 보이던 이미지에서 일탈하고자 한 이영애의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연기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것처럼 보였던 배우 이영애의 행보는 거기까지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의 다음 작품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쉬운 일이었다. 새로운 작품 대신 그녀가 택한 건 결혼이다.
                    카메라도, 팬들도 없는 호젓한 바닷가에서 치른 가족과 친지들만 참석한 조촐한 결혼식은 후일담으로 전해졌고, 그로부터 얼마 뒤 이영애는 쌍둥이를 출산했다. 그녀는 마치 연기라는 전반전을 끝내고 결혼이라는 후반전을 시작한 사람처럼 두문불출하며 결혼과 육아에 전념했다. 그런 그녀와 만나게 된 것은 아이들 때문이다. 내 아이가 생기자 다른 아이들의 고통도 남의 일 같다는 그녀는 마리끌레르와 함께 어른들의 도움만으로 불행에서 해방될 수 있는 아이들을 찾아 손잡아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동의했다. 동참의 의사를 표현한 브랜드들과 함께한 화보 촬영은 이틀 동안 경기도 여주에서 이어졌다. 쌍둥이가 이유식을 먹기 시작한 뒤에도 수유를 계속 하는 그녀에게 꼬박 이틀에 걸친 촬영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이영애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고, 더 많은 아이들을 


                    10楼2011-11-07 12:14
                    回复
                      위해 기꺼이 촬영에 응했다. 어느새 휴대폰 저편의 남자를 '여보'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것이 익숙해진 그녀와 여주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얘기를 나눴다.
                      


                      11楼2011-11-07 12:14
                      回复
                        大叔你不用笑 那么大口吧。虽然偶们知道你开心


                        IP属地:江苏12楼2011-11-07 12:55
                        回复
                          아직 돌이 채 안 된 아이들은 어떤가.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아기들은 너무 예쁜데 한 고비 넘기면 또 문제가 생기고, 다시 생기고 해요. 그래도 감사하죠.
                          수유 중이라고 들었다. 아이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나. 내 새끼들. 그런데도 아직 아이들 보면서도 내가 이 애들 엄마인가 실감이 나지 않을 때도 가끔 있어요.
                          이유식을 시작하고 나서도 수유를 하나? 대단한 정성이다. 남들 하는 거 똑같이 하는 거예요. 학교 때 친구들은 이미 아이가 다 커서 키울 때 기억이 가물가물하대요. 엄마들이 들어가는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요. 주로 보기만 하지만 그 안에서 정보를 많이 얻죠. 국민 기저귀 있는 거 모르셨죠?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들에 그렇게 '국민'이란 말을 붙이더라고요. 국민 기저귀, 국민 장난감 얘기 나오면 저도 사요. 뽀로로도 사고(웃음). 아기들은 아직 뽀로로 모르는데 제가 더 좋아하거든요.
                          최근 들어 늦은 나이에 첫 출산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긴 했다, 마흔에 첫아이를 낳는 건 어떤 경험이었나? 나이 들어 출산한다는 건 일장일단이 있겠죠. 저는 적극 권하는 편이에요. 나이가 들면 20~30대 때보다는 아무래도 경제적인 여유도 있고, 정보도 많아지고. 그만큼 안팎으로 준비도 많이 할 수 있어서 준비된 출산이 될 수 있으니까요. 산후우울증에 걸릴 확률도 더 낮은 것 같아요. 얼떨결에 아이 낳고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많이 보니까. 20~30대 때 열심히 일하고, 요즘은 얼마든지 자기 하기 나름이니까 몸 가꾸고 돌본다면 나쁘지 않아요.
                          


                          13楼2011-11-07 14:20
                          回复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의 모든 어린 것들에 애틋함 같은 것이 생기던데. 더 깊은 감정이 생겨요. 예전에도 사랑받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아이들 볼 때는 마음 아프다, 당연히 도와줘야지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예 못 보겠어요. TV에 그런 아이들이 나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볼 수가 없는 거예요. 내 아이가 생각나기 이전에 감정이 증폭돼서 깊어진 것 같아요. 이번에 마리끌레르와 같이 캠페인을 하게 된 계기도, 이왕이면 내가 인터뷰를 할 거고, 은퇴한 건 아니니까 인터뷰를 안 할 건 아니잖아요, 인터뷰를 할 거면 내 이름 석 자가 아직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데 내 이름을 이용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어요. 화보 촬영을 할 계기는 많이 있었지만 그걸 아끼고 힘을 모아서 조금 다른 데 기회가 될 때 힘을 더하고 싶었고. 내 이름에도 유효기간이 있을 테니까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런 기회가 있다면 앞으로 더 자주 하게 되지 않을까요?
                            


                            14楼2011-11-07 14:20
                            回复
                              출산도, 결혼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 회자됐다. 배우가 시선 받는 데 익숙한 직업이라고는 하지만 지나친 관심이 힘들었을 것 같다. 특히 출산 때는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이 폭력적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법적 대응 같은 걸 하지 않은 건 알지만 감정적으로 어떻게 대처했나? 글쎄. 즉흥적으로 준비한 게 아니라 오랫동안 생각하고 준비하지 않았겠어요? 제 성격을 아는 분이라면 어련히 알아서 준비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을 거예요.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거라는 예상을 안 한 게 아니에요. 오히려 스스로 더 유연해진 느낌이죠. 감정이나 대처 방식 같은 것들이요. 나를 한 번 쳤다고 해서 스프링처럼 튕겨져 나가는 게 아니라 스펀지처럼 흡수할 수 있게 됐어요.
                              그래도 예민해지기 쉬운 출산 직후라 보는 사람으로서는 저런 식이라면 상처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만큼 내가 나에 대해서 고민하고 생각해서 결정한 부분이라, 그런 것까지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자신감. 이런저런 얘기가 들린다고 흔들리지 않았어요. 나이도 있고. 이제는 감정이 많이 달라졌어요.
                              


                              15楼2011-11-07 14:25
                              回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