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백은오 기자] SBS 주말극 '돈의 화신'은 방송 전 주연배우들의 구설수로 모양새가 별로 안 좋았던 데다가 진행되면서 막장논란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소위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 인기 드라마의 공식대로 동시간대 MBC '백년의 유산' KBS2 '개그콘서트' KBS1 '대왕의 꿈' 등과 당당하게 맞서며 시청률 2위의 '개그콘서트'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조인성 송혜교 같은 슈퍼스타도 없고, '아이리스 2'같은 블록버스터도 아니지만 이 드라마가 화제의 중심에 선 이유는 각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워낙 강하고 희극과 비극을 넘나드는 드라마틱한 스토리라인을 갖추고 있으며 기억상실과 복수라는 특수장치가 꽤 그럴 듯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이차돈(이강석, 강지환 분)은 진지함과 가벼움을 넘나든다. 복화술(김수미 분)의 차에 치여 기억을 모두 잊어버린 뒤 마치 로보트같은 정지된 캐릭터를 보이더니 성장해 검사가 된 뒤에는 과장된 충성과 복종의 리액션을 보이는가 하면 뒤
그는 수사를 위해 복재인(황정음 분)을 이용하지만 그 방식과 연기가 어색하기 그지 없고 사사건건 어수룩한 모습으로 말썽만 피워 선배 여검사 전지후(최여진 분)에게 번번이 야단 맞고 핀잔을 듣는 허당이다. 그의 파트너 수사관 양 계장(양형욱 분)이 주는 웃음도 만만치 않다. 이름부터 '양계장'이다. 검찰 수사관이라면 냉철하고 날카로워야 하지만 그는 한 없이 부드럽고 인간적이며 돈에 약하다. 이차돈이 검사시보 시절 도와달라고 복화술의 으리으리한 요릿집으로 데려가 대접을 하고 돈봉투를 내밀자 낼름 받아먹는 스타일이다. 압권은 이차돈이 변호사 개업 첫 손님으로 박기순(박순천)에게 수임받기 위해 그가 감금돼있는 정신병원으로 위장잠입해 보여준 모습이다. 그는 장애인으로 꾸며 청소 허드렛일을 하며 병원 구석구석을 촬영하며 암약하는데 연기 속의 연기가 시청자들의 배꼽을 자극했다. 모녀 복화술과 복재인은 이 드라마 최대의 코미디다. 상상을 초월하는 식탐으로 어려서부터 남다르게 뚱뚱한 재인은 자신의 외모 때문에 번번이 남자에게 버림받다가 성장해서 결정적으로 이차돈에게 이용당하자 엄마의 돈을 훔쳐 달아나 전신성형수술로써 미녀로 거듭난다.
사채업계의 큰 손 '진고개 신사'인 복화술은 사사건건 말썽 피우는 재인에게 속상해 하면서도 하나뿐인 딸을 좋은데 시집보내는 게 꿈이다. 그래서 똑똑한 이차돈을 남몰래 후원해 검사가 되게 만들었다. 이 모녀가 매 회 티격태격 싸우면서 안겨주는 재미는 자칫 무거운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 이 드라마의 중심을 잘 잡아준다. 결코 유치하지 않은 상황설정이 꽤 흥미로운데 이 중심에는 관록의 김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진지한 상황에서 허무개그도 펼친다. 지난 9회 가석방돼 고아원에서 일자리를 얻은 박기순은 원장실을 청소하던 중 우연히 벽에 붙은 사진에서 잃어버린 아들 강석을 발견한다. 이 무거운 장면에서 카메라는 돌연 원장의 명패를 보여주는데 그 이름이 도간희다. 영화 '도가니'를 패러디한 것이다. 앞서 복재인이 전신성형수술을 받을 때는 영화 '미녀는 괴로워'를 패러디했다. 영화 속에서 김아중 집도의 역을 맡았던 이한위를 그 역할 그대로 카메오 출연시켰고 수술 후 복재인이 백화점을 누비며 자신의 미모를 뽐내는 부분에서는 '미모는 나의 무기'라는 영화의 OST를 삽입했고 상황도 영화를 그대로 복제했다. 이제는 진지한 잔혹드라마다. 강석의 아버지 이중만(주현 분)은 거대 재벌로서 여배우 은비령(오윤아 분)의 스폰서였고 예전 자신의 운전기사의 아들 지세광(박상민 분)을 후원해 검사가 되게 만들었다. 그런데 세광과 비령이 이중만의 눈을 피해 연인관계로 지내면서 사악한 음모를 꾸며 이중만을 죽이고 그 전재
세광은 비령마저 배신한다. 그는 이중만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자신의 감정마저도 가장했던 것. 그는 비리 정치인 정해룡(김학철 분) 전 서울시장을 잡기 위해 혈안이 돼 뛰어다니지만 사실 그가 정의로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정해룡의 유혹마저 거절할 때는 그 어디에도 없을 청렴한 검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는 더 큰 야욕을 불태우고 있고 그런 그의 욕망 앞에서 정해룡의 제안 따위는 눈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 속에는 착한 사람이 없다. 은비령은 이중만을 죽이고 그의 전 재산을 빼앗아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 황장식(정은표 분) 변호사마저 죽여버린다. 강석의 집안을 풍비박산낸 공범은 지세광 은비령 황장식을 비롯해 권재규(이재영 분) 검찰청장과 고호(이승형 분) 기자다. 이들은 목적을 위해 손을 잡았지만 그 누가 더 사악하고 출세욕이 강한지 우열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표독하고 표리부동한 인물들로 언제 서로의 목에 칼을 들이댈지 모른다. 은비령이 대표적인 예다. 사실 주인공 강석부터 비정상적인 인물이다. 검사생활을 지겹도록 오래 한 것도 아니고 시보를 떼고 검사로 정식 임용되자마자 각종 비리에 손을 댄다. 법의 수호자로서 검사가 된 게 아니라 오로지 개인의 욕심을 위해 검사 자리를 노린 것으로 밖에는 안 보인다.
이렇게 '돈의 화신'은 돈에 눈 먼 어른들의 진흙탕 싸움이 난무한다. 돈의 유혹 앞에서 가장 깨끗하고 곧은 심지를 가졌으며 준법을 위해 뛰어야할 검찰의 간부들이 온갖 비리사건에 연루된 모습은 확실한 잔혹동화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흥미롭긴 하다. 지엄하고 냉정해야 할 검사를 비리인물로 설정해놓고 그들의 위태로운 욕망의 외줄타기를 보여주니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다. 특별한 액션 없이도 스릴과 서스펜스를 주는 법정 드라마의 장점과 전형적인 한국식 막장 드라마의 형식, 그리고 허무개그적인 코미디 요소를 적당히 버무린 이 드라마, 과연 재미있다고 해야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