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은 1인자다. 하하는 그의 추종자고, 박명수는 그에게 새해 덕담으로 “다 해먹어라”며 부인할 수 없는 그의 위치를 인정했다. 정준하는 유재석에게 잔소리를 덜 들었으면 하는 형이다. 그런데 정형돈은, 유재석에게 대놓고 서운해 할 수 있다. 지난 1월 24일 방송에서 유재석이 자신의 말을 잘랐을 때, 정형돈은 삐진 표정을 그대로 보여줬다. 물론 프로그램 상의 설정이 다. 하지만 유재석은 그 날 SNS에 올린 팬의 바람대로 정형돈에게 10분 동안 메인 MC를 맡기며 이렇게 말했다. “형돈이도 진행 잘해요.”
아이돌]의 MC다. [무한도전]에서 최근 그의 [우리동네 예체능] 출연을 두고 ‘운동선수’라 놀리는 것은 그의 현재이기도 하다. 유재석과 함께 [무한도전]의 유이한 개근 멤버이자 스포츠와 음식과 아이돌을 모두 소화하는 인기 MC. 박명수의 별명이었던 ‘2인자’가 유재석 다음으로 잘 나가는 [무한도전] 멤버를 일컫는 것이라면, 지금 2인자는 정형돈이다. “센터에서 진행하면 숨 막혀.” 그러나 정형돈은 박명수처럼 ‘1인자’를 욕심내지 않는다. [무한도전]처럼 중앙에서 더듬거릴 만큼 진행을 못 할리는 없지만, 그에게는 중앙에 서겠다는 야망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는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자신만만한 최현석 셰프에게 “많은 분들이 최현석 셰프를 능가했거든요”라고 놀리고, 자신의 입맛에 유독 맞는 음식을 하는 김풍 셰프에게 “데리고 살고 싶다”며 농담을 던진다. 공동 MC 김성주가 셰프들의 요리 대결을 전달하면서 전체적인 흐름을 잡는 사이, 정형돈은 [무한도전] 에서 그가 하는 것처럼 다른 패널들과 뒤엉키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 과정에서 정형돈과 김풍 사이에는 MC와 패널의 관계로만 정의할 수 없는 케미스트리가 생겼고, 셰프들은 캐릭터를 얻었다. 유재석은 최고의 진행자고,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잡아주는 능력도 최고다. ‘런닝맨’에서 유재석이 그 날의 가장 중요한 게스트와 대부분 팀을 이루는 이유다. 그러나 프로그램 전체의 흐름을 봐야 하는 그는 출연자들과 이야기를 진행하다가도 다시 진행자의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 반면 정형돈은 유재석이, 또는 강호동과 김성주가 전체적인 진행을 하는 사이 다른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발견하고, 그와의 관계에 몰입한다. 물론 지난해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유재석이 자리를 비웠을 때처럼 잠시 MC를 맡을 수도 있다. 지드래곤과 ‘형용돈죵’을 결성,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베스트 커플대상’을 받을 만큼 한 명의 캐릭터로서도 최강이다. 그런데 [냉장고를 부탁해]처럼 스포츠 경기 중계하듯 진행하는 김성주의 흐름에 맞춰 더 큰 재미를 끌
[무한도전]에서 무엇을 해도 어색한 캐릭터로 놀림을 받을 때부터, 정형돈은 늘 자신을 쇼의 상황 속에 빠뜨렸다. 다른 출연자들에게 놀림을 받으면 화를 내고, 소외 되면 놀아달라며 진상도 떨었다. 하지만 정형돈은 그런 캐릭터를 가진 패널로만 머물지도, 메인 MC가 되기 위해 다른 MC처럼 진행하지도 않았다. [주간 아이돌]에서 정형돈은 아이돌과 같이 게임을 하고, 뿅망치로 때리고, 때로는 출연자를 붙잡아 넘어뜨리기까지 한다. 말주변이 없거나, 이미지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아이돌도 [주간 아이돌]에서는 실컷 웃고, 나름의 캐릭터를 얻는다. [냉장고를 부탁해]처럼 셰프들이 실력대결을 하는 곳에서도 셰프들과 뒤엉켜 놀면서 경연장을 유쾌한 잔치로 만든다. [무한도전]에서 오래전부터 ‘햇님 달님’같은 관계를 만들며 유재석이 MC가 아닌 플레이어로 활약할 공간을 마련한 역할을 맡은 것도 그다. 정형돈은 [무한도전]에서 지난 10년 동안 보여준 ‘형돈이’ 그 자체로 MC를 하고, 자신만의 진행 스타일을 만들고, 결국 그만의 쇼를 만들었다. 그래서 정형돈이 ‘센터’를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그의 한계가 아니다. 이것은 정형돈의 승리다. 버라이어티 쇼가 어색하던 남자가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팬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방식으로 MC를 맡았으며, 결국 자신의 스타일을 투영시킨 쇼를 만들어 나간다. 정형돈이 유재석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진행자로서는 김성주와 전현무가 더 크게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형돈이 [무한도전] 이후 10년 동안 만든 캐릭터와 그의 스타일은 누구도 지배할 수 없는 그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10년 전 존재감 없다고 놀림 받던 예능인이 그 모습으로 인기 MC가 됐다. 그리고, 30대 후반이 된 지금도 장난기 가득한 악동처럼 굴며 경쟁 가득한 세상의 쇼를 순수한 놀이터로 만든다. 그러니까, [무한도전] 10년을 맞아 이 말 한마디쯤은 해줘도 되지 않을까. 정형돈, YES! YES! YES!